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원로 작곡가이자 지휘자 최영섭 선생이 2026년 6월 29일 노환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97세.
최영섭 선생은 평생 한국 가곡과 합창음악 발전에 헌신하며 수많은 명곡을 남긴 음악가입니다. 특히 분단의 아픔과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담은 '그리운 금강산'은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국민 가곡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의 별세 소식은 음악계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에게도 깊은 안타까움을 전하고 있습니다.

최영섭 프로필
| 이름 | 최영섭(崔永燮) |
| 출생 | 1929년 11월 28일 |
| 별세 | 2026년 6월 29일 |
| 향년 | 97세 |
| 고향 | 경기도 강화 |
| 직업 | 작곡가, 지휘자, 오르가니스트 |
| 대표곡 | 그리운 금강산, 고요한 아침의 나라, 오! 사랑하는 나의 조국 |
| 주요 경력 | 한양대학교 음악학과 교수, 중앙대학교 음악교육학과 겸임교수 |
| 수상 | 2009년 은관문화훈장 |
어린 시절, 음악을 운명으로 선택하다

최영섭 선생은 1929년 경기도 강화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한국전쟁이라는 격동의 시대와 함께했습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잃지 않았고, 음악은 그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유년 시절 가족과 함께 인천에서 생활한 그는 학생 시절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습니다. 이후 인천중학교에 진학했지만 서울 경복중학교로 편입했고,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작곡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국내 작곡 교육의 선구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작곡가 임동혁에게 작곡법을 배우며 음악적 기초를 다졌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는 악보를 읽고 곡을 만드는 일에 남다른 흥미를 느꼈습니다. 새로운 멜로디를 떠올리면 곧바로 악보에 옮겨 적는 일이 일상이었고,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아낼 수 있는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1947년 경복중학교 재학 중에는 직접 작곡한 작품으로 첫 발표회를 열며 음악가로서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또 오르간 연주자로도 활동을 시작하며 연주와 작곡을 함께 이어갔습니다. 10대 후반에 이미 창작과 연주를 병행한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음악가의 꿈을 키운 청년 시절
고등학교를 졸업한 최영섭 선생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에 진학하며 본격적으로 전문 음악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에서는 서양 클래식 음악의 이론과 작곡 기법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한편, 한국인의 정서를 담아낼 수 있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서양 음악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의 역사와 자연, 민족의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훗날 그의 대표작인 '그리운 금강산'과 '고요한 아침의 나라' 같은 작품으로 이어졌습니다.
졸업 후에는 더 넓은 음악 세계를 배우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지휘와 음악을 공부했습니다. 당시 유럽은 클래식 음악의 중심지였으며,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활동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는 유럽에서 최신 음악 이론과 지휘법을 익히며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음악인으로 성장했습니다.

귀국 후 한국 음악 발전에 헌신
유학을 마친 뒤 귀국한 최영섭 선생은 자신의 경험을 한국 음악 발전에 쏟았습니다.
이화여자고등학교 음악 교사를 시작으로 대학 강단에 서며 후학을 양성했고, 한양대학교 음악학과 교수와 중앙대학교 음악교육학과 겸임교수 등을 역임하며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습니다. 또한 오케스트라 지휘자로도 활발히 활동하며 한국 클래식 음악과 합창 문화 발전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평생 "한국인의 마음을 담은 음악"을 만들겠다는 신념을 지켰습니다. 화려한 기교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선율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이러한 철학은 그의 작품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오랜 세월 변함없이 창작과 교육을 이어간 결과, 최영섭 선생은 한국 가곡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그리운 금강산'은 단순한 노래를 넘어 분단의 아픔과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담은 국민 가곡으로 자리 잡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운 금강산'으로 한국 가곡의 역사를 쓰다
최영섭 선생을 대표하는 작품은 단연 '그리운 금강산'입니다.
이 곡은 아름다운 금강산을 직접 볼 수 없는 현실과 분단의 아픔,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담아낸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웅장하면서도 서정적인 선율은 한국 가곡의 대표작으로 평가받으며 지금도 음악회와 학교 행사, 각종 기념식에서 자주 연주되고 있습니다.
'그리운 금강산'은 단순한 가곡을 넘어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정서를 담아낸 작품으로 자리 잡았으며,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국민 애창곡이 되었습니다.
한국 가곡 발전에 평생을 바치다
최영섭 선생은 '그리운 금강산' 외에도 수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대표곡으로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 '오! 사랑하는 나의 조국' 등이 있으며,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애국심을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는 단순히 작곡가에 머무르지 않고 지휘자와 오르가니스트로도 활동하며 국내 음악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특히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으며 한양대학교 음악학과 교수와 중앙대학교 음악교육학과 겸임교수를 지내는 등 수많은 음악인을 길러냈습니다.
교육자로서도 학생들에게 음악적 기초뿐 아니라 예술가의 책임감과 한국 음악의 정체성을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음악계가 인정한 거장
최영섭 선생은 평생 한국 음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문화훈장은 문화예술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되는 정부 훈장으로, 최영섭 선생은 수십 년 동안 이어온 창작 활동과 교육, 지휘 활동을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지금도 많은 성악가와 합창단의 레퍼토리로 연주되고 있으며, 한국 가곡을 대표하는 명곡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들국화 최성원의 아버지
최영섭 선생은 대한민국 대표 록밴드 들국화의 베이시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최성원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클래식 음악을 대표하는 아버지와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아들이라는 특별한 가족 이야기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서로 활동 분야는 달랐지만, 음악을 향한 열정만큼은 닮아 있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별세 소식과 빈소
유족에 따르면 최영섭 선생은 2026년 6월 29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97세입니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7월 1일 엄수될 예정입니다.
음악계에서는 한국 가곡의 거목을 잃었다며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으며, 그의 작품과 업적을 기리는 추모의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원히 기억될 한국 가곡의 거장
최영섭 선생은 단순한 작곡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했고, 한국 가곡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예술 장르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그리운 금강산'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감동을 전하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명곡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과 교육에 대한 열정은 앞으로도 후배 음악인들에게 큰 자산이 될 것입니다.
마무리
최영섭 선생의 별세는 한국 음악계에 큰 슬픔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아름다운 선율과 작품들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리운 금강산'을 비롯한 수많은 명곡은 세대를 이어 불리며, 그의 이름 또한 대한민국 음악사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