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배우 하영의 가족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뜻밖의 이름 하나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바로 안상호라는 인물입니다.
하영의 증조부로 알려진 안상호는 지금으로부터 150년이 넘는 1872년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역사 속에서 찾아보면 꽤 놀라운 이력이 등장합니다.

1902년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자격을 취득한 조선인.
조선으로 돌아온 뒤 서양의학을 가르쳤던 의사.
한국인 의사들의 조직을 이끌었던 사람.
그리고 1919년에는 갑작스럽게 쓰러진 고종을 직접 진료했던 의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는 밝은 기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여성과 결혼했고 일본식 생활을 했다는 당시 신문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이 때문에 훗날 그의 행적을 둘러싸고 여러 해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안상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한 사람의 인생을 단순히 친일 또는 반일이라는 한 단어로 규정하기 전에, 그가 살았던 시대와 실제로 남아 있는 기록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안상호 프로필
- 이름: 안상호
- 출생: 1872년
- 직업: 의사, 의학교 교관
- 주요 활동: 서양의학 교육 및 진료
- 일본 유학: 도쿄자혜의원의학교
- 주요 경력: 의학교 교관, 동제의학교 계열 서양의학 강사
- 의료 활동: 서울 종로 일대에서 개인 진료
- 주요 사건: 1919년 고종 진료
- 가족 관계: 배우 하영의 증조부로 알려짐

1872년, 조선에서 태어나다
안상호가 태어난 1872년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시대였습니다.
조선은 아직 왕조 국가였고 서양의학이라는 개념도 일반 사람들에게는 낯설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병을 치료한다는 것은 오랜 전통을 가진 한의학과 민간요법을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기에 안상호는 새로운 의학의 세계로 들어갔습니다.
바로 서양의학이었습니다.
안상호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은 일본 유학이었습니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의학을 공부했고, 1902년 도쿄자혜의원의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의사자격증을 취득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은 해외에서 의사 자격을 얻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100년도 훨씬 전 조선인에게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 자격을 얻는 일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그의 인생은 당시 조선 사회의 변화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배운 의학을 가지고 조선으로 돌아오다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한 안상호는 1904년 조선으로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가 일본에서 배운 의학을 자신의 개인적인 성공에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조선에서 서양의학을 가르치는 일에도 참여했다는 점입니다.
안상호는 지석영이 세운 의학교 등에서 서양의학을 가르쳤고, 동제의학교 계열에서도 서양의학 강사로 활동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도 1910년 동제의학교의 뒤를 이어 만들어진 동서의학강습소에서 안상호가 서의학 강사로 활동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에는 의사라는 직업 자체가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서양의학을 제대로 배운 조선인 의사는 더욱 드물었습니다.
안상호는 일본에서 배운 새로운 의학을 조선으로 가져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사람이 됐습니다.
종로에 진료소를 열었던 의사
안상호는 교육만 한 것도 아닙니다.
서울 종로 일대에 개인 진료소를 마련하고 직접 환자를 진료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상당히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100년이 훨씬 전 서울의 거리에서 서양식 의학을 배운 조선인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서양의학은 지금처럼 익숙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의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여러 변화와 충돌이 있었을 것입니다.
안상호는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일본인 의사들 사이에서 한국인 의사들을 이끌다
안상호의 활동 중 또 하나 눈에 띄는 부분은 한성의사회입니다.
당시 경성에는 일본인 의사들을 중심으로 한 의사 조직이 있었고, 안상호는 이에 대응해 한국인 의사들이 참여하는 한성의사회의 회장을 맡았습니다.
이 대목만 놓고 보면 안상호의 삶을 단순하게 설명하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그는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했고 일본인 아내와 생활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한국인 의사들의 조직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 안에 서로 다른 모습이 함께 존재했던 것입니다.
운명이 바뀐 순간, 고종을 진료하다
안상호의 이름이 역사 기록에서 더욱 강하게 등장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고종의 진료입니다.
1919년 고종이 덕수궁 함녕전에서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안상호가 급히 진료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고종은 끝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 안상호의 인생에는 무거운 의혹이 따라붙게 됩니다.
당시 고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의혹이 제기됐고, 안상호 역시 일본 측의 사주를 받아 고종에게 독약을 올렸다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확인되는 자료만으로 이 의혹을 사실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뚜렷한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고, 공식적으로 인정된 사실도 아닙니다.
따라서 안상호를 이야기할 때 이 부분은 ‘고종 독살 의혹이 제기된 의사’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그가 실제로 그런 일을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100년 전 신문에서 뜻밖의 기록이 나온다
안상호의 인생이 오늘날 다시 주목받은 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1918년 매일신보 기사입니다.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에는 1918년 당시의 매일신보 자료들이 디지털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 기사에서는 안상호의 가정을 일본식 생활을 받아들인 가정으로 소개했습니다.
일본인 여성과 결혼해 일본식 생활을 했다는 내용이 등장했고, 안상호가 자신을 일본 사람과 비슷하게 표현한 기록도 전해집니다.
이 기록 때문에 오늘날 안상호를 두고 친일 행적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논란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 실린 기사입니다.
따라서 기사 자체가 안상호의 삶 전체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당시 신문이 일본과 조선의 동화를 긍정적으로 홍보하는 맥락에서 안상호의 가정을 소개했을 가능성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완용을 3번 치료한 의사
안항소는 이완용 피습사건때 이완용을 수술한 의사 중 하나라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안상호는 친일파였을까?
이 질문 때문에 안상호의 이름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인 인물을 평가할 때는 상당히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에서 공부했다는 사실,
일본인 여성과 결혼했다는 사실,
일본식 생활을 했다는 당시 신문 기록만으로
그 사람의 모든 행적을 친일로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그런 기록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현재 공개된 자료를 기준으로 보면 안상호의 친일 행적을 명확하게 입증하는 자료가 확인됐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안상호라는 인물을 바라볼 때는 당시 시대 상황과 여러 기록을 함께 놓고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한 문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안상호의 인생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조선으로 돌아와 서양의학을 가르쳤습니다.
서울에서 환자를 진료했습니다.
한국인 의사들의 조직을 이끌었습니다.
궁중에 출입하며 왕실 진료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고종의 마지막 순간을 진료했던 의사로 기록됐습니다.
동시에 일본인 여성과 결혼했고 일본식 생활을 했다는 기록도 남았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복잡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에게는 이처럼 서로 다른 모습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안상호의 인생은 단순히 한쪽으로 결론을 내리기보다 당시 조선 사회가 서양의학과 일본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한 사례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100년이 지나 다시 이름이 알려진 이유
안상호가 세상을 떠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잊힌 이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후손인 배우 하영이 알려지면서 증조부의 이름까지 다시 세상에 등장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100여 년이 지난 뒤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오래된 신문과 역사 자료를 찾아보면서 안상호가 단순히 ‘배우의 증조부’가 아니라 근대 한국 의학의 역사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위치에 있었던 인물이라는 사실도 함께 알려지게 됐습니다.
안상호라는 이름이 남긴 것
안상호의 인생을 돌아보면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는 변화가 거셌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전통적인 조선에서 근대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의학을 배웠고, 일본에서 의사 자격을 얻어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배운 의학을 가르치고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왕실의 진료에도 참여했고, 고종의 죽음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에도 이름을 남겼습니다.
동시에 그의 삶에는 지금의 기준으로도 여러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안상호의 인생은 쉽게 미화해서도, 반대로 단 한 가지 이미지로 몰아붙여서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역사는 사람을 한 문장으로 기억하지만, 실제 사람의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872년에 태어난 한 조선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그의 이름이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있습니다.
배우 하영의 증조부라는 사실에서 시작된 관심이지만, 그 안에는 한국 근대의학과 일제강점기의 복잡한 시대를 살아간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습니다.
안상호라는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