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영을 처음 알게 된 사람이라면 의외라고 느낄 만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녀가 원래부터 배우를 꿈꿨던 집안의 사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하영의 집안은 상당히 오랫동안 의사의 길을 걸어온 집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증조부부터 할아버지, 아버지, 언니까지 의사.
그런 집안에서 태어난 하영은 가족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병원이 아닌 촬영장으로 갔고, 청진기 대신 대본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배우 생활이 어느덧 여러 작품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정해인과 함께 넷플릭스 작품의 주연으로 이름을 올릴 만큼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하영이 방송에서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던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가족사가 과거 기록을 찾아보는 과정에서 논란으로 번진 것입니다.
그 중심에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가 있습니다.
도대체 안상호는 어떤 사람이었고, 하영은 어떤 집안에서 태어나 배우가 된 것일까요?
하영 배우 프로필
- 이름: 하영
- 본명: 안하영
- 출생: 1993년
- 직업: 배우
- 데뷔: 2019년 KBS2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
- 주요 작품: ‘닥터 프리즈너’, ‘중증외상센터’, ‘월간남친’, ‘참교육’, ‘이런 엿같은 사랑’ 등
- 가족: 4대째 의사 집안으로 알려짐
- 증조부: 의사 안상호
- 현재 활동: 배우 및 작품 활동
하영은 2019년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를 통해 배우로 데뷔했습니다.
이후 꾸준히 작품을 이어오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 ‘월간남친’, ‘참교육’ 등에 출연했고, 2026년에는 정해인과 함께 넷플릭스 시리즈 ‘이런 엿같은 사랑’의 주연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하영은 왜 배우가 됐을까?
하영의 가족 이야기를 보면 오히려 배우가 된 과정이 더 궁금해집니다.
집안의 중심에는 의학이 있었습니다.
증조부부터 의사였고 할아버지도 의사, 아버지도 의사, 언니 역시 의사로 알려졌습니다.
말 그대로 집안의 전통이 의학으로 이어져 온 것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면 자연스럽게 의사의 길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영은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배우가 됐습니다.
가족이 걸어온 길을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2019년 ‘닥터 프리즈너’로 데뷔한 이후 여러 작품에서 연기를 하면서 조금씩 배우로서 자신의 경력을 만들어갔습니다.

하영의 이름을 알린 작품들
하영은 데뷔 이후 한 작품으로 갑자기 스타가 된 배우는 아닙니다.
여러 작품을 거치며 조금씩 얼굴을 알렸습니다.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와 ‘월간남친’, ‘참교육’ 등에 출연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얼굴이 됐습니다.
배우에게는 이런 과정이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이름보다 얼굴이 먼저 알려집니다.
그리고 2026년에는 또 한 번 중요한 작품을 만났습니다.
정해인과 함께한 ‘이런 엿같은 사랑’
하영에게 2026년은 배우로서 중요한 해입니다.
정해인과 함께 넷플릭스 시리즈 ‘이런 엿같은 사랑’의 주연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극 중 하영은 기억을 잃은 검사 고은새를 연기합니다.
정해인이 맡은 장태하는 자신이 고은새의 남자친구라고 주장하는 인물입니다.
두 사람이 동거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특히 정해인은 하영에 대해 연기에 대한 열정과 긍정적인 에너지가 큰 배우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하영은 이제 단순히 조연으로 얼굴을 알리는 배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품보다 가족 이야기가 더 큰 관심을 받았다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배우로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던 시기에 사람들이 하영의 연기보다 가족 이야기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지난 8월 7일 방송된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하영은 자신의 집안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증조할아버지가 일본에서 양의학을 배워 한국에서 개원한 의사였고, 할아버지와 아버지, 언니까지 의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영 입장에서는 자신의 가족이 오랫동안 이어온 의료인의 역사를 이야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방송 이후 사람들이 증조부가 누구인지 찾아보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증조부의 이름이 안상호라는 사실이 알려졌고, 과거 기록들이 하나둘 다시 등장했습니다.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는 누구였나
안상호는 1872년부터 1927년까지 살았던 의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인생은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특별했습니다.
1902년 일본 도쿄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인으로는 처음 일본 의사자격증을 취득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조선으로 돌아와 서양의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궁중에도 출입했습니다.
고종과 순종의 건강을 돌본 의료진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하영이 방송에서 증조부를 소개하면서 이야기한 ‘고종을 진료했던 의사’라는 설명도 이런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하영이 자신의 집안 역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한 이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후 다른 기록들이 나오면서 문제가 복잡해졌습니다.
이완용을 치료했던 의사라는 기록
안상호의 이름은 1909년 이완용 피습 사건과 관련된 기록에서도 등장합니다.
당시 이재명 의사가 이완용을 습격했고, 부상을 입은 이완용은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안상호가 의료진으로 참여했다는 기록이 확인됐습니다.
이 사실만으로 안상호가 이완용의 정치적 행보를 지지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는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상호에게는 또 다른 기록이 있었습니다.
1916년 대정친목회 명단
논란이 더욱 커진 이유는 대정친목회입니다.
최근 확인된 자료에 따르면 안상호는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연합뉴스가 전한 역사학계 자료에 따르면 당시 안상호는 21명의 평의원 가운데 한 명으로 확인됐습니다.
대정친목회는 1916년 경성에서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대정실업친목회, 일명 대정친목회를 일제강점기 친일 단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관련 연구에서는 대정친목회가 일본과 조선의 ‘내선융화’를 주장했고, 이후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협력하는 성격을 보였다고 평가합니다.
이 기록이 확인되면서 안상호를 둘러싼 평가는 이전보다 훨씬 복잡해졌습니다.
그렇다고 안상호를 이완용과 똑같이 볼 수 있을까?
여기서는 구분이 필요합니다.
이완용은 역사적으로 대표적인 친일 인물로 평가받는 사람입니다.
반면 안상호는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했고, 일본인 여성과 결혼했다는 기록과 대정친목회 평의원으로 참여한 기록이 확인되고 있지만, 그의 모든 행적을 이완용과 동일하게 볼 수 있는지는 별도의 역사적 검토가 필요한 문제입니다.
실제로 연합뉴스는 안상호가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았다는 점도 함께 전했습니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 가장 정확한 표현은 “안상호의 친일 관련 행적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도입니다.
‘친일파였음이 모두 확정됐다’고 단정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하영에게 불똥이 튄 이유
문제는 하영 자신이 일제강점기 인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영은 1993년생 배우입니다.
안상호가 활동했던 시대와는 한 세기 가까운 시간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영이 방송에서 직접 증조부 이야기를 꺼냈고,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가족사를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증조부의 행적까지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됐습니다.
결국 배우 하영의 개인적인 발언이 가족의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다시 역사적 기록을 찾아보는 과정에서 논란이 커진 것입니다.
하영 소속사의 입장도 바뀌었다
처음에는 소속사 역시 안상호의 친일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취지의 입장을 냈습니다.
하지만 하루 만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추가 확인 결과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안상호의 이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소속사는 역사적 사실과 인물의 이력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 신중한 검증이 필요했다며 사과했습니다.
하영 역시 이번 일로 마음이 무거운 상황이라며 앞으로 더욱 신중하고 겸허한 자세로 임하겠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집안의 역사는 바꿀 수 없지만 자신의 인생은 만들어갈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의 조상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어떤 집안에서 태어날지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증조부 안상호가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 어떤 기록을 남겼는지는 역사학자들이 자료를 통해 판단해야 할 영역입니다.
하영은 자신이 선택한 배우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논란을 통해 가족사를 대중에게 소개할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작품을 통해 자신의 연기와 이름으로 평가받는 것이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하영의 다음 이야기는 배우로서 이어지길
하영의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2019년 배우로 데뷔했습니다.
조연과 여러 작품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중증외상센터’, ‘월간남친’, ‘참교육’을 지나 이제는 정해인과 함께 넷플릭스 주연 배우가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이름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는 배우.
그것이 현재의 하영을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